Role 기획 Curator
일시정주[一時定住] _ Blake Lim의 사회적 고향 탐험기
Location 동네사무소, 속초시
일시정주[一時定住] _ Blake Lim의 사회적 고향 탐험기
2023 문화가 있는 날 신문화권발굴프로젝트 <문화지대>
–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 주관 #지역문화진흥원 #칠성조선소
– 협력 #무소속연구소 #ITSOK #이든웍스
사진 및 영상 : Ethan Yang
기획/글 : 옥민아
디자인 : 데이웍스
‘탈정주 [脫定住] ;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 으로부터 이탈하다.’
태어난 고향에서 한 평생을 살다 생을 마감하는 시대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나고 자란 지역은 한 인간의 성장속도보다도 빠르게 변한다. ‘고향’이라는 단어는 사멸되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여기는 이는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고향의 소멸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다종적이다. 도시의 집값, 경제력이 살 곳을 지정하는 거주 주체성의 상실. 주택 정책에 따라 명멸하는 지역의 운명. 개인은 내가 살 곳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 같은 상황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피해자가 되고 시류에 휘둘리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새로운 시대의 질서, 재편된 도덕으로 파악하는 순간, ‘탈정주’의 개념이 탄생한다. 내가 Blake Lim을 알게 된 것은 약 3년 전, 팬데믹이 전 세계를 집어삼킨 격리의 시대였다. 그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였다. 그의 SNS를 염탐하며 대리 만족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2년 후, Blake Lim을 실제로 만난 자리에서 고백하였다. 그는 자신이 머물 곳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장소의 기억을 몸에 새기며 또한 그 기억을 휘발시켜 또 다른 장소로 자신을 이동시키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인간이다. 또한 그는 유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고향을 찾아 탐험하는 자였다. 그에게 정주와 탈정주, 그러니까 ‘일시정주’의 개념을 설명해 주었다. Blake Lim은 일시정주라는 말을 듣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의 인생은 일시정주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머무는 장소 뿐만 아니라 나의 성 정체성, 직업과 신념, 세상의 모든 가치관으로부터 말이에요.”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기억을 잃은 것인지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 헷갈린다 하였다.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고 사진으로 기록하였으나 내가 언제 그 곳에 머물렀는지 기억나지 않는 자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시정주의 존재. 그가 ‘쏙쵸’라고 부르는 곳에서의 일시정주를 결정한 순간, 나는 그에게 전시를 제안했다. 사라지는 그의 기억을 사물로 기록하는 ‘일시정주’ 전시는 결코 확정되지 않을, 어쩌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Blake Lim의 사회적 고향을 찾는 여정을 담는다. 도시는 현대인의 자연이다. 도시라는 생태계를 움직이는 문명과 자본의 질서는 현대인의 생존의 법칙에 다름아니다. 나는 Blake Lim에게 또 다른 생존 방식으로서 ‘탈정주’를 제안했다. 상황이 정하는 주거, 처지가 결정하는 거주, 사회적 위치가 지정하는 지역, 이들은 더 이상 ‘정주’를 보장하지 못한다. 개인의 의지는 자본과 도시의 질서를 이기기에 턱없이 힘이 약하다. 도시의 거대한 흐름에 종속되지 못하고 퇴출당한 이들에게 ‘탈정주’는 대안이 아닌 또다른 생존의 해법, 혹은 존재방식에 대한 풀이가 될 것이다. ‘탈정주 [脫定住]’ ;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 으로부터 이탈하다. Blake Lim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집을 소유하지 않고, 사물을 소비하지 않으며, 지역에 종속되지 않는 삶을 누린다. 비어 있는 집을 구하고 당근마켓을 통해 필요한 사물을 얻으며 일시정주가 끝나는 순간, 모든 사물을 지역에 되돌려 놓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정주가능한 삶으로부터 (포기가 아닌) 이탈하는 순간, 나의 고향은 지구로 확장된다. 좁게는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으로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Blake Lim의 삶의 방식이다. 이 책은, 탈 정주를 결정한 사회적 고향 탐험가 Blake Lim의 양태를 관찰, 기록한다. ‘탈정주 [脫定住];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 으로부터 이탈하다.’의 개념을 처음으로 Blake에게 소개한 기획자의 글을 통해 그의 여정이 궁금해졌다면, ‘잠시 머물고, 떠난다’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Blake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일시정주하는 삶을 겪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속초에서 마주친 ‘사물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통해 가늠한다. Blake의 일시정주를 증거하는 사물들이 전시되고 팔려가던 날은 마치 마을 잔치같았다. 당근마켓을 통해 만난 속초의 정주자들과 나눈 ‘사물로 나눈 대화’. 사물의 이야기를 곰곰이 살피며 사물을 내 놓기도, 들이기도 하는 광경은 흡사 시장이오 축제였다. 바야흐로 Blake가 속초에서의 일시정주를 위해 ‘취[合]하고 수집[集]한 사물을 이[離]전하니 산[散]재’하게 될 것이다. Blake의 여정이 또 어딘가에 일시적으로 정주하는 동안에…
2023. 11. 29 – 12. 10